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 페루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정당은 아니고, 2007년 [[블라디미르 세론]]이 결성한 '자유 페루 정치지역운동'이 시초다. 2012년 '자유지상 페루'로 개명했지만, 이 때는 아직 정당은 아니었다. 그 후 2016년 정당으로 개편하고 세론이 대선 출마를 시도했지만, 지지율이 턱 없이 낮았고, 행여나 등록이 취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에 불참한다.[* 페루 선거법상 득표율이 5%에 미달할 경우, 자동으로 등록이 취소된다. 참고로 [[대한민국]]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었으나, 2014년 위헌 판결을 받아 폐지되었다.] 2019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2020년 총선에도 도전했지만, 3.4%의 득표율로 봉쇄조항 5%를 넘기지 못 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사실 여기에는 뒷배경이 있는데, 원내 진입이 어려워 보이자 비슷하게 좌익, 사회주의를 표방한 [[페루를 위하여 다함께]] 및 [[신페루당]] 등과의 선거 연대가 검토되었고, 실제로 의석 배분을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당을 이끌 세론이 바로 한 해 전 징역 4년 5개월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었고, 언급한 2개의 연대 파트너는 세론의 이러한 범죄 경력을 문제 삼아, 도중에 논의를 '''중단'''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이 뿐만은 아니고 후술할 이념적 차이도 한 몫을 하기는 했지만, 연대 논의가 중단되면서 셋 다 따로 뛰었고, 결국 모두 다 '''허무하게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2021년 대선을 앞두고 교사 파업을 이끈 [[페드로 카스티요]]를 영입해 대선 후보로 출마시켰고, 초반만 해도 일개의 군소후보에 그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언급했다시피 이 당은 빼도 박도 못 하는 군소정당이었고, 그런 정당의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당초 결선 진출이 유력해 보였던 기득권 중도우파 성향 정당들과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이들의 잦은 실책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겹쳐 지지율이 상승하더니, 1차 투표에서 18.92%의 득표율로 깜짝 1위를 기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이들을 대놓고 무시한 이들로서는 한마디로 [[설마가 사람 잡는다|설마가 사람 잡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차 투표의 상대는 이미 재수했고, 무엇보다도 [[알베르토 후지모리|전직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라서, 경력이 사실상 전무한 카스티요가 후지모리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출구조사에서도 후지모리에게 근소하게 뒤진 것도 있고. 그러나 최종 개표 결과, '''근소하게 카스티요 후보가 후지모리 후보를 이겼다!''' 다만 게이코 후지모리가 승복을 거부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어 페루 선관위의 선거 결과 확정이 늦어지고 있다. 결국 결선투표 후 43일만에 페루 선거심판원에서 게이코 후지모리의 재검표 요청 등을 최종 기각하면서 공식적으로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게이코 후지모리 역시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210610003000087|#]] 여당이 되었지만 페루 의회에서 야당의 의석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페루를 위한 모두와 함께 정부를 꾸렸으며, [[자유주의]] 성향의 우리가 페루다-보라당의 신임 공급을 받게 되었다. [[2022년]] [[7월 2일]]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을 '''출당시켰다'''. 형식상으로는 자진탈당이지만 "자진탈당하지 않으면 강제 제명하겠다"고 해서 카스티요를 축출한 것. [[2022년 페루 친위 쿠데타 시도]] 때는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에 대항했으며 쿠데타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